만나고싶었습니다

Q 구자영 회장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후배들을 격려해주시기 위해 모교를 방문해주셔서 또 한 감사드립니다. 먼저 서울공대지 독자 동문들에게 근황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회사는 사장한테 물려주고 많은 것에 관여하지는 않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습니 다. 평일에는 부산에 내려가 있고 주로 주말에 서울에 올라오는 편입니다.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세대들이 잘 하고 있어 크게 걱정은 없습니다.

 

Q 54년도에 조선공학과에 진학하셨는데, 당시 학과를 선택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원래는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여러 가지가 어려워져서 진로를 변경하여 공과대학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선친께서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데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냐. 조 선을 해보는 게 어떠냐’ 라고 말씀을 주셨던 것이 큰 계기가 됐습니다. 참고로 선친께서는 광업을 하셨는데, 정반대로 조선을 추천해주셨고 저도 공부를 하며 조선분야에 흥미가 생겨 계속해서 조선공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Q 조선공학과에서 공부하던 당시에 생각나는 추억이 있으신가요?

A 제일 생각나는 것은 공과대학이 육군사관학교 옆에 신공덕에 있었는데 교통편이 시원치 않아서 학교 다니기가 무 척 어려웠던 생각이 납니다. 육사 통근열차가 있었는데 화물칸에 목재의자를 놓은 것이지요. 그리고 철도 옆에 휘발 유 송유관이 매설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휘발유를 훔쳐 가느라 송유관에 구멍을 내서 휘발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요. 마침 일찍 가는 통근열차가 지나가다가 기관차 불똥으로 불이 났어요. 그래서 우리 고등학교 동창 화공과 에 다니던 친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일도 있었지요. 3학년 때는 조선에 관한 사진전시회를 열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된 동기는 조선에 대해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 고, 조선과에 다닌다고 하면 한국하고 다르냐고 놀림을 받는 일까지 있었지요. 그래서 조선은 이런 것이다 하고 우선 교내에서 친구들에게 알려줘야 되겠다 하고 시작하게 되었지요. 세계의 큰 조선소 해운회사에 편지를 보내서 사진이 나 자료를 협찬을 받았어요. 친절하게도 여러 군데에서 각종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8만톤급 대형 여객선 퀸 메리호의 사진이라든가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을 찍은 사진이라든가 또 선박의 모형을 보내온 곳도 있었어요. 그래 서 우리 학생들이 선박설계도의 라인스라든가 선박의 구조도도 제도를 하고 각 사진의 설명도 붙이고 하면서 준비를 하던 과정에 교수님께서 보시고 교내에서만 전시하기에는 아깝다고 규모를 크게 해 보자고 하셔서 동화백화점 화랑 에서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화랑이 동화백화점(현.신세계 백화점)밖에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전시 회 개막 날에는 해운, 조선 등을 관할하는 전국의 해무청의 청장님 윤일선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님이 참석하셔서 큰 행사가 되었던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Q 졸업당시 우리나라에는 조선산업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을텐데 어떤 분야로 첫 발을 내딛으셨는지 궁금합 니다.

A 이렇게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4학년 등록을 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졸업 후 취직에 관한 생각 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별로 취직을 잘 못하시던 시절이라서 우리는 어디에 취직이 될 것인가 아주 막막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종흘 교수님을 찾아가 뵈었지요. “4학년 등록을 했습니다. 이제 졸업 후에 취직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공부를 해서 어디로 취직이 되겠습니까?”하고 여쭤봤지요. 교수님 말씀이 “취직할 데가 없네. 특별히 떠 오르는 곳이 없네. 그런데 우리나라에 고등고시 기술과라는 제도가 있는데, 거기에 합격을 하면 고급 기술직 공무원 으로 채용이 될 텐데 아직 조선과에는 합격자가 없네. 그걸 한 번 해보게”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게 내 살 길이구나 하고 공부를 시작해서 합격이 됐습니다. 시험과목은 국사, 헌법, 행정법, 선박구조, 조선공학, 선박설계, 열역학, 물리학 이런 과목이었습니다. 8월에 시험을 보고 12월에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58년도에 졸업을 하고 상공부에 취직이 됐습니다. 3년간 수습기간을 거치고 조선계장, 조선과장이 되어 우 리나라의 조선정책을 총괄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정부주도형 경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계획에 따라서 계획에 조 선사업 발전계획을 포함시켜서 추진을 했습니다. 어떤 규모의 조선소를 어디에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소요자금 도 마련을 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Q 우리나라 조선이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발전 과정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A 196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조선은 아주 미약했습니다. 2천톤급 정도 밖에 건조하지 못했습니다. 선박수요자인 해운 회사들도 빈약해서 큰 배를 건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재정자금운용 경제개발 특별회계 등으로 예산을 세워서 국회에 승인을 거쳐 조선자금을 마련하였는데, 그 금액은 1천톤짜리 화물선 5~6척 정도 건조할 수 있 는 정도의 소규모였습니다. 그 당시에 세계적으로는 1,500만톤에서 2,000만톤 정도의 선박이 매년 건조되고 있었으 며, 그 절반을 일본이 건조,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시장에 진출하면 조선소에 일거리가 생기고 우리 조선기술자들도 취직이 될 것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으로 국내 조선자금에 기댈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자 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조선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천톤급 실적 밖에 없고, 그 당시 유일한 조선소 대한조선공사는 2만톤(약 170M)정도의 배를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소 그만한 배를 우리 자금과 기술로 한 척이라도 건조한 실적이라도 보여야 외국으로 진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선 조선실적을 만들기로 했습 니다. 정부가 배정하는 조선자금을 3년을 쓰지 않고 모아서 1만8천톤급 팬 코리아호라는 배를 짓게 됐습니다. 이 과정 에서 예산당국과 국회에서는 작년에 준 돈도 안 쓰고 왜 또 달라고 하느냐, 감사원에서는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해를 넘기니 업무태만이라고 하고 각 조선소와 해운회사에서는 배를 쪼개서 1천톤짜리고 2천톤짜리고 작은 배를 만들자, 조선소는 일감이 없다고 항의를 하고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3년을 버텨 1척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조선이 인정을 받아서 미국 걸프에서 2만톤과 3만톤급 유조선 6척을 주문하는 등 외국으로부터 선 박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편, 세계 시장에서는 초대형 유조선을 건조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시행되므로 여기에 맞 춰서 30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건조할 수 있는 대형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울산의 현대조선, 거제도의 삼성조선과 대우조선을 건설해서 세계의 5대 조선국으로 진입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했지요.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가 조선공업에 있어서 세계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게 됐습니다.

 

Q 그렇게 상공부에서 지내시다가 창업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궁금하네요.

A 74년에 현대중공업에서 26만톤급 유조선 제1호, 제2호선을 진수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거제도에 2개의 조선소도 착착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조선은 이제 다되었으니 이제 자동차를 해보라고 수송기계과로 전출명령이 내려졌어요. 그래서 2년을 자동차 공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조선을 천직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술공무원이다보니 조선에만 종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장·차관이 될 것도 아닌 데 조선과 멀어지는 것은 아쉽고, 차라리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조선쪽에 돌아가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 보는 것이 낫 겠다싶어서 상공부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그리고 욕심 같아서는 조선소를 경영해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조선소 등에 취직하는 것 보다는 독자적으 로 제조업을 경영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조선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 조선기자재 제조를 해보자고 시작 한 것입니다.

 

Q 그럼 창업하신 시점이 78년도이신가요?

A 76년에 상공부를 퇴직하고 이런저런 준비과정을 거쳐서 79년 5월에 회사를 차렸습니다. 어느덧 올해로 40년이 되었군요.

 

Q 공무원으로서 아무래도 정책 쪽에 계셨고 몇 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치긴 하셨지만 요즘이라면 쉽지 않은 결정 인 것 같습니다. 이제 사업으로 넘어가서요. 운영하시는 회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A 우리 회사, KTE는 선박용 전장품 제어기기 그리고 Thruster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해운회사 조선소 에 납품하고 있고 각국 선급의 다양한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 안 1,000척이 넘는 선박에 우리 제품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Q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계시고 특히 외국 업체에 비해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어떤 점이 있을까요?

A 우리 회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멘스나 ABB같은 메이커에 비하여 손색이 없는 우수하고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서 우리나라 대형조선소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볼 때에, 우리회사 제품은 성능이 우수하고, 값이 낮고 서비스가 신속하기 때문에 외국제품보다 우리 것을 좋아하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 제품은 선박 설계과정에서 마지막에 스펙이 결정되는 것으로 건조 공사 중에도 스펙이 변하고는 합니다. 따라서 이럴 때에 신속 한 서비스는 조선소의 공정에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외국제품을 사용할 때에 비하여 비용이 절감되는 면이 크 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최근 몇 년간 국내 조선업계가 어려워져서 기자재업계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위기를 돌 파할 수 있는 중점적인 계획은 있으신지요. 특히 연구소도 갖추고 R&D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요?

A 조선소가 수 년 동안 어려웠지요. 그랬다가 금년 들어서 조금씩 나아지는 조짐이 보입니다. 우리 조선기자재업체들 은 조선소가 좋은 값으로 선박주문을 많이 받아서 우리에게 오더를 많이 주시는 게 제일 좋지요. 기자재업체도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업무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쉬운 과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박/조선업은 해운업과 더불어서 일 반적인 세계 경제에 따라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구조조정을 잘 하고, R&D투자 등으로 대비하다보면 사이클이 잘 돌아가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R&D를 통해 일반산업용과 함정용으로 업종을 다각 화하여 성적을 많이 올린 덕에 불황에 도움이 됐습니다.

 

Q 4차 산업혁명의 산업환경 하에서 특히 control & management system을 중심으로 한 system integration 은 그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조선해양 분야의 새로운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 어떤 분 야의 개발이 필요할까요?

A 각 조선소 별로 Smart ship을 개발하고 있죠. 우리는 제어기기와 automation 전문기업이라 Smart ship에 적용 할 분야가 많지요. 그래서 R&D의 일환으로 그들의 요구하는 여러 분야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조선소, 시스템/장비업체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겠군요. 그럼 경영관점에서 중소기업으로서 인재를 채용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요?

A 어려움이 많지요. 우리는 전력/전자 쪽에서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데 지원자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회사에 있는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죠.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좋은 사람은 부족하고, 있는 사람들만 일을 더 하고 있는 실 정입니다

 

Q 부산/경남권 학생이 입사를 많이 하나요?

A 그렇죠. 그런데 다들 서울/대기업을 희망하는 편입니다. 요즘 들어 좋은 사람을 뽑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Q 특히 그러실 것 같네요. 전기전자는 가고자 하면 분야가 워낙에 많으니까요.

A 그렇죠. 저희가 잘 양성해서 쓸만해지면 대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하지요. 업무의 특성상 우리 사원이 대형조선소 에 가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하다보면 자연히 임금 비교를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사원이 충 격을 받기도 한답니다.

 

Q 그 다음에 벤처창업에 관련해서, 우리 공과대학은 학생들의 벤처창업지원에 관심도 많고 많이 지원하고 권 장을 하는데, 교수들도 고민이 있습니다. 조선 쪽이 워낙 쉽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대기업 들어가서 열심히 하라고만 할 수도 없고 도전의식을 불어넣고 싶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창업을 하셨으니까 하고 싶은 말씀 은 없으신지요?

A 맨 처음 플랜은 다 아시겠지만 용기가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겠지요. 특히 벤처를 하더라도 기술만 가 지고 되는 건 아니고 경영에 관한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무제표라도 볼 줄 알아야겠죠. 경영에 대한 연구 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조선은 하드웨어 쪽이잖아요. 벤처가 성장하기엔 더 어려움이 크겠습니 다만 smart ship에 참여하는 것처럼 IT분야와 융합한 벤처 쪽으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T분야가 아 닌 Hardware쪽이라면 처음부터 전부 본인이 할 생각을 하면 안되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최소한의 장비를 가지고 외 주를 활용하고 최종 조립만 자기가 한다라는 생각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공단에 와보면 별게 다 있습 니다. 하청을 주어서 검사를 잘 하고,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진입은 쉽지 않겠지만, 자리 잡으면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A 동감합니다.

 

Q 한 기업을 장기간 이끌어오신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리더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015년 에는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되었는데, 특별히 임직원들의 건강한 회사생활을 위해 신경 쓰시는 부 분이 있으신지요?

A 우리는 처음부터 직원에게 자기가 맡은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일일이 명령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어서 잔소리 없이도 모두 일을 잘합니다. 리더는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소기업이지 만 출산휴가 등 정부가 장려하는 정책들을 모두 반영하고있습니다. 출산 후 돌아와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경 력단절 같은 일은 없습니다. 사원 후생을 위해서 복지기금을 설정하고 휴게실, 식당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특히 우 리 회사는 꽤 넓은 숲을 가꾸어 놓았습니다. 사원들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가족친화 우수기업이 된 모양입니다. 다른 회사에 전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원이 다른 회사에 가보니 우리 회사 좋은 것을 알게 됐다고 하지요. 하다보면 사이클이 잘 돌아가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R&D를 통해 일반산업용과 함정용으로 업종을 다각 화하여 성적을 많이 올린 덕에 불황에 도움이 됐습니다.

 

Q 4차 산업혁명의 산업환경 하에서 특히 control & management system을 중심으로 한 system integration 은 그 역할이 비약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조선해양 분야의 새로운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 어떤 분 야의 개발이 필요할까요?

A 각 조선소 별로 Smart ship을 개발하고 있죠. 우리는 제어기기와 automation 전문기업이라 Smart ship에 적용 할 분야가 많지요. 그래서 R&D의 일환으로 그들의 요구하는 여러 분야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조선소, 시스템/장비업체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겠군요. 그럼 경영관점에서 중소기업으로서 인재를 채용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요?

A 어려움이 많지요. 우리는 전력/전자 쪽에서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데 지원자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회사에 있는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죠.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좋은 사람은 부족하고, 있는 사람들만 일을 더 하고 있는 실 정입니다. 

 

Q 부산/경남권 학생이 입사를 많이 하나요?

A 그렇죠. 그런데 다들 서울/대기업을 희망하는 편입니다. 요즘 들어 좋은 사람을 뽑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Q 특히 그러실 것 같네요. 전기전자는 가고자 하면 분야가 워낙에 많으니까요.

A 그렇죠. 저희가 잘 양성해서 쓸만해지면 대기업에 스카우트되기도 하지요. 업무의 특성상 우리 사원이 대형조선소 에 가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하다보면 자연히 임금 비교를 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사원이 충 격을 받기도 한답니다.

 

Q 그 다음에 벤처창업에 관련해서, 우리 공과대학은 학생들의 벤처창업지원에 관심도 많고 많이 지원하고 권 장을 하는데, 교수들도 고민이 있습니다. 조선 쪽이 워낙 쉽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대기업 들어가서 열심히 하라고만 할 수도 없고 도전의식을 불어넣고 싶은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창업을 하셨으니까 하고 싶은 말씀 은 없으신지요? A 맨 처음 플랜은 다 아시겠지만 용기가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겠지요. 특히 벤처를 하더라도 기술만 가 지고 되는 건 아니고 경영에 관한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무제표라도 볼 줄 알아야겠죠. 경영에 대한 연구 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조선은 하드웨어 쪽이잖아요. 벤처가 성장하기엔 더 어려움이 크겠습니 다만 smart ship에 참여하는 것처럼 IT분야와 융합한 벤처 쪽으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T분야가 아 닌 Hardware쪽이라면 처음부터 전부 본인이 할 생각을 하면 안되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최소한의 장비를 가지고 외 주를 활용하고 최종 조립만 자기가 한다라는 생각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공단에 와보면 별게 다 있습 니다. 하청을 주어서 검사를 잘 하고,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진입은 쉽지 않겠지만, 자리 잡으면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A 동감합니다.

 

Q 한 기업을 장기간 이끌어오신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리더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015년 에는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되었는데, 특별히 임직원들의 건강한 회사생활을 위해 신경 쓰시는 부 분이 있으신지요?

A 우리는 처음부터 직원에게 자기가 맡은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일일이 명령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어서 잔소리 없이도 모두 일을 잘합니다. 리더는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소기업이지 만 출산휴가 등 정부가 장려하는 정책들을 모두 반영하고있습니다. 출산 후 돌아와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경 력단절 같은 일은 없습니다. 사원 후생을 위해서 복지기금을 설정하고 휴게실, 식당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특히 우 리 회사는 꽤 넓은 숲을 가꾸어 놓았습니다. 사원들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가족친화 우수기업이 된 모양입니다. 다른 회사에 전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원이 다른 회사에 가보니 우리 회사 좋은 것을 알게 됐다고 하지요

 

Q 최근 한일 경제, 무역마찰이 심화되면서 국산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데요, 조선분야는 강력한 내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의견이 어떠신지요?

A 우리나라의 조선은 거의 모두가 수출선입니다. 그래서 조선용 기자재도 생산하면 모두 수출용 원자재가 됩니다. 과 거 우리나라 공업 초창기에 국산화가 된 품목은 모두 수입이 안됐어요. 국내공업육성정책이었지요. 다만 수출용 원자 재는 수입금지 품목이라도 수입이 허용됐습니다. 따라서 조선용 기자재는 국산화가 되어도 수입금지가 되지 않고 수 입이 허용됐기 때문에 정부의 보호는 못 받고 조선선진국의 제품과 개발단계부터 무한 경쟁을 해왔습니다. 품질, 성능 과 가격 모두가 좋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지요. 저는 1983년부터 조선기자재공업협동조합이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18년 동안 하면서 조선기자재의 국산화 촉진과 활용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조선기자재 maker가 이런 고생을 해서 오늘 에 이르렀으니까 각 maker의 체질은 튼튼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세계 제일이 된 원동력이기도 하지요.

 

Q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드립니다. 회장님께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조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후학 양성을 위한 지원에도 감사드립니다.

A 우리나라 조선이 어렵게 어렵게 세계 제일이 됐어요. 이런 귀중한 산업이 쇠퇴하지 않도록 앞으로는 우리 조선과 후 배들이 잘 이끌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글로벌 조선 분야에서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가진 후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남은 생의 보람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