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소식

"한국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해주는 연구개발(R&D) 문화가 절실합니다."

차국헌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지난달 제28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마친 후 최근 이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패스트 폴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공만 좇는 R&D 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은 국민보고대회 준비를 위해 매일경제팀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차 학장은 "삼성은 과거 선진국 추격형이었지만 이제 베낄 것이 없는 선도형 기업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향하면서 실패를 용인해주는 문화가 필요하고, 누구도 해보지 않은 분야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 학장은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소인 고등계획연구국(DARPA)의 R&D 시스템을 좋은 R&D 문화 사례로 소개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DARPA 과제를 하는 사람들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스탠퍼드대 등의 최고 인재들이었다"며 "돈과 상관없이 진행하고 또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R&D를 하는 모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DARPA는 특정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과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고를 낸 뒤 경쟁을 통해 연구진을 선발한다"고 덧붙였다.

2015년 DARPA는 재난·재해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로봇기술대회를 개최하고 연구비와 상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로봇 기술이 2~3단계 뛰어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덕분에 국방부뿐 아니라 국토안보부, 백악관 국가정보국장실, 에너지부, 교육부 등 미국의 다수 정부 부처와 구글 등 민간기업이 DARPA 모델을 도입했다.


차 학장은 "DARPA 모델은 항상 추격자였던 한국이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플랫폼"이라며 "현재 정부 R&D의 상당수가 개발 초기 단계부터 경제성을 따지는 만큼 혁신을 위해서는 이 같은 제도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학장은 마지막으로 "DARPA 모델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기술이 민간으로 이양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것이 우리 경제와 고용을 창출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DARPA 모델은 땅속에서 사용 가능한 GPS나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양자정보 처리 시스템 개발처럼 `살상무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GPS를 비롯해 스텔스 기술 등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파생된 기술이 인터넷이나 아이폰의 시리처럼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