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습니다

박중흠 동문님, 반갑습니다. 서울공대지 독자 동문들께 간단한 이력과 현재 근황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2013년 삼성중공업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에선 연구 설계와 혁신을 주로 담당하였고 전문적인 생산업이라서 국제적인 단체나 기업의 CEO 등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대략 3,000명 이상의 분들과 명함을 주고받은 듯합니다. 그런데 2010년까지만 해도 많은 수주를 하던 삼성중공업에 2012년부터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성장이 제대로 된 성장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 무렵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겼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에 와서 본 시스템 중 건설업 관련은 플랜트 건설이었습니다. 플랜트업 또한 옛날에는 유가 상승과 맞물려 발주를 많이 받았지만 2012년 무렵부터 플랜트업 수익에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죠.

 

1974년에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입학을 하셨는데 조선공학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당시 공릉동에서 학교를 다녔을 텐데 학창시절의 추억이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당시에는 유신헌법 시절이라 교실보다 길거리에서 데모하던 때였습니다. 처음 계열별 모집을 하던 시절이어서 1학년을 마친 후 과를 정하였는데 아마도 데모는 못 하게 막고 공부를 시키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들어와서는 문학서적에 관심이 많아 문학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했습니다. 학업에는 상대적으로 집중하지 못했고요. 그러다보니 2학년에 들어 과를 정할 때 선택한 과에는 다 떨어지고 조선공학과에 어찌어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조선공학과는 저에게 숙명 같은 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커뮤니케이션과 어플리케이션을 필요로 하는 과였고 이것이 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저의 적성에 굉장히 잘 맞았습니다.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를 시작으로 삼성중공업에서 오래 계셨는데 삼성중공업에서 어떤 일들을 맡으셨나요? 

 

회사에서 주로 담당했던 분야가 기술영업, 즉 고객과 직접 미래에 대한 생각을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공업 전체를 크게 볼 수 있었고 조선공업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봐야 할지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일례로 1981년 알래스카에서 엑슨 발데즈라는 큰 대형유조선이 좌초돼 원유 유출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한국 조선업에 큰 행운을 안겨줬습니다. 첫 번째로 이 사건은 Double Hull(이중 선체)라는 기술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조선산업의 선발주자인 일본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Double Hull을 적용하게끔 설비를 바꾸면 선박가격이 40%정도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은 제일 먼저 Double Hull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설비도 Double Hull을 적용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에 약 20여 년 정도 일본에게 뒤쳐져 있던 조선업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과거에는 해양산업이 기존에 있던 중고선에 플랜트를 지었었는데 이 Double Hull 때문에 새로운 배에 플랜트를 올리는 방법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92년에 삼성중공업이 BHP사에 ‘그리핀 벤쳐(Griffin Venture)’라는 세계 최초의 FPSO를 수주하였습니다. 엑슨 발데즈호 사고는 한국 조선업이 FPSO사업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처럼 상황을 잘 읽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큰 성공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삼성중공업에 계시다가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기셨는데, 업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원유를 비롯한 자원 개발 기술은 육지에서 시작해서, 얕은 바다, 심해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삼성중공업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옮겼지만 큰 맥락에서는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해양 개발기술은 작은 배 위에 모든 것을 구현해야 하므로 배치기술이 중요하고, 엔지니어링 산업은 사하라 사막 같은 오지에서 설비가 없는 채로 시작해야 하므로 인력 채용이 삼성중공업보다 2배 가량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비를 구해오는 문제,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공사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계획된 시스템보다 사람이 더 필요하면 추가로 사람을 뽑고, 추가로 비자도 발급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더 뽑거나 장비를 더 들여오는 것은 그 자체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는, 숙련된 인력과 시스템, 장비가 모두 구축된 상황에서 일하는 삼성중공업보다 엔지니어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습니다. 최근 플랜트산업의 실패 요인은 EPC의 설계(engineering)와 구매(procurement)에서 현장을 중시하지 않은 채 지원하여 생긴 현장의 비용 손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 초에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연임하셨는데, 올해의 향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국제 원유가가 떨어져서 이제는 단순한 EPC[설계(engineering), 구매(procurement), 제작(construction)]만 가지고 사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TECHNO-EPC라는 EPC 전 단계에서의 ENGINEERING ENVIRONMENT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발주자가 플랜트를 발주하기 전에 엔지니어링 회사가 참여를
해서 가장 효과적인 플랜트설계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전엔 발주자가 초기 조건을 다 설계한 후 건설업 끼리의 가격 경쟁구도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발주자에 의한 설계가 최적화된 설계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TECHNO-EPC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발주하기 전에 엔지니어링이 참여하면서 가
격 경쟁이 아닌 기술 경쟁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회사간의 경쟁도 줄고 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를 잘하는 것이 중요해져서 엔지니어링 회사가 강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삼성엔지니어링의 주력 분야에 대한 시장 상황은 어떤가요? 어려운 여건을 헤쳐나갈 전략은 어떤 것인지요?


전세계적으로 현재 EPC산업이 다 어려운데 가장 큰 임팩트는 저유가에서 오게 됩니다. 유가가 떨어졌다는 것은 수요 보다 공급이 많아서 생긴 일인데, 공급을 줄이려고 하니 플랜트를 건설하지 않게 되므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또 유가가 떨어지니 산유국의 재정상태에 문제가 생겨 financing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유가와 직접적으로, 대략 98% 정도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지금은 유가가 떨어져서 공급을 줄이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오일과 가스 개발 분야는 앞으로 4년간 크게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오일과 가스가 싸다는 것은 페트병이나 비닐 등을 만드는 원료가 저렴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석유화학이 아닌 다른 인프라는 비교적 유가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은 석유화학 분야를 조금 줄이고, 바이오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성장하는 분야는 바이오라고 생각되어서 동아제약의 바이오공장,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3번째 공장을 인천 송도에 짓고 있으며. 바이오에 특화된 바이오팀도 만들었습니다. 바이오산업은 경험이 없으면 발전시키기 어려운 산업인데, 삼성 바이오 로직스나 동아제약을 통해 바이오공장 건설의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다만 바이오산업은 사람의 생명과 연관이 있는 만큼 미국 FDA에서 밸리데이션(validation)을 강하게 요구하는데, 이에 대한 기술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차별화했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이 합병을 추진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는데 두 회사가 합병하면 어떤 시너지가 있나요?

장기적으로는 합병이 도움이 될까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술의 원천은 같습니다. 다만 삼성중공업은 주로 선박을 건조해왔기 때문에 해양분야와 관련해서는 외국 회사에 엔지니어링을 맡겼는데 이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이 설계는 제작성(constructibility)을 고려하지 않았고,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조선사에서 전부 떠안았기 때문에 비용 면에서 많은 손해가 발생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술을 삼성중공업에 이식하면 Win-Win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의 상부구조(topside) 부분을 자체적으로 설계하지 못하고 해외 설계에 의존하던 것을 삼성엔지니어링과 협업하여 설계하면 삼성중공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합병이 추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사 간의 해결할 문제점이 있어 당장은 합병이 불가하다고 결정됐고, 그 시점에 유가가 떨어지면서 해양 산업이 침체되어 두 회사 모두 어려워지면서 합병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서울대 공대생들에게 삼성엔지니어링은 입사하고 싶은 좋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바라는 인재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산업마다 다양한 인재상이 필요하겠지만 EPC업이 적용되는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에는 최적의 답을 낼 수 있는 사람, total optimization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관련된 직종의 사람과 대화하여 최적의 솔루션을 내는 능력은 상당히 많은 소통과 기술적 호기심,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
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독불장군이 되면 안 되고 주위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성을 쌓지 말라’입니다. 이 세상의 보기 좋은 성들도 전부 함락되고 주인이 바뀌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쌓는 것 대신에 도로를 놓는 것, 열린 마음으로 여러 사람과 협업해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
려는 도전정신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바라는 인재상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신입사원을 봐왔는데, 협업에 능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다양한 상과 직책을 많이 받으셨는데 가장 기억이 나고 의미 있는 상이나 직책이 있으신가요?


마침 이번에 ‘서울대 공대 발전공로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공대 발전에 대한 상을 수상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상을 받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하지만 조선이나 건설, 플랜트업 등 EPC업들이 전부 좋지 않은 상황이라서 상을 받으면서도 제 마음이 많이 무거웠고, ‘과연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이렇게 어려운데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보라는 격려로 알고 이 상을 받겠습니다. 

 

서울대 공대에서는 최근 산학협력을 확대하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산학협력의 더 많은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적용산업(application industry)인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큰 과제를 가지고 산학협력을 진행하는 것보다도, 일하다가 부딪히는 것에서 즉각적으로 산학협력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삼성중공업과 카이스트가 23여 년 동안 산학협력을 했었는데, 그 때는 산업현장 설계과정의 문제점을 카이스트 내 가장 적
합한 교수님과 즉각 협력했었습니다. 플랜트업에서도 이런 산학협력이 필요한데 아직 이 산업에서는 산학협력 정도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도 산학협력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회사로서도 산학협력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어떤 보고서를 만들어 발주자에게 제출하면 발주자는 일단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울대 공대 같은 믿을만한 제3의 기관에 검증을 받으면 쉽게 승인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설계는 EPC업의 회사에서 했더라도 대학 교수님들과 협의해서 전체적인 프로시져가 맞다는 지지를 받으면 일이 훨씬 쉽게 풀리기 때문에, 교수님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학의 화두는 학문 융합입니다. 이공계에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서울대 공대는 전공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에는 I형 인재, T형 인재 등 여러 가지 인재형이 있는데, 산업체에서는 궁극적으로 T자형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전공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것과 함께 EPC산업에서는 발주자와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심리를 생각하고, 이해하여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대 학
생들도 인문학적 소양을 많이 쌓아 통섭형 사고를 하는 T자형 인재로 발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불투명한 세계경제와 가속화되는 세계화, 이러한 급변하는 사회환경에서도 우리 서울대 공대생들이 이사님과 같은 선배들을 본받아 사회의 리더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학창시절에 어떤 자질을 더 길러야 할지요?


현재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바뀔 때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 씨는 “우리 나름의 세상이 있어 스마트폰과 연계 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닌텐도는 외부 상황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그 결과 회사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보다는 현재의 변화를 빠르게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후배들이 도전하는 정신인 ‘호연지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한 기업 중 하나인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Elon Musk)를 보면 ‘호연지기’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전기자동차 분야뿐 아니라, 우주 발사체 회수 분야로도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기 분야의 한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
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후배들도 자유로운 정신, ‘호연지기’를 키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지요?


육상과 해상(onshore and offshore)을 통합시켜야 한국의 EPC에 갈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유가가 떨어져 있는 지금이 onshore와 offshore의 협업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준비할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저의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많은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멘토링했는데 이러한 기회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